제목: 내 이름은 짐달라마시커미시카다
작가: 산디야 파라푸카란 글/ 미셸 페레이라 그림/ 장미란 옮김
출판사: 책읽는곰
발행일: 2023. 9. 22.
서평: 이창기(창원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
올해 여름, 디즈니의 ‘엘리멘탈’이라는 애니메이션 영화가 입소문을 타며 국내 박스오피스를 상대적으로 길게 점령하였다. 한국인의 다문화에 대한 민감성은 아직 걸음마 수준에 머무르고 있지만 한국인들은 다문화라는 주제 자체에 대해서는 기꺼이 관심을 가지고 더 알아나가고자 하는 태도를 갖춘듯하다. 이번 서평을 통해 사람의 ‘이름’에 대한 다문화적 민감성을 높여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영화 ‘엘리멘탈’의 한 장면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그림책 ‘내 이름은 짐달라마시커미시카다’에 대한 서평으로 넘어가고자 한다. 영화 ‘엘리멘탈’에서 주인공 엠버(Ember)가 출생하기 이전, 불(火) 민족인 엄마와 아빠가 물(水)의 나라로 이민을 오면서 입국심사를 받는 장면이 나온다. 흙(土)의 모습을 한 입국심사 담당직원은 엠버의 부모에게 이름과 그 철자(spelling)를 말하라고 요구한다. 불 민족인 엠버아빠는 ‘끓이는’, ‘지지는’, ‘타는’ 등의 소리를 조합하여 이름의 철자를 정확히 말해주지만 입국심사 직원은 인상을 찌푸리고 “How about Bernie and Cinder?”라고 말하며 이들의 이름을 Bernie와 Cinder로 바꿔버린다. 이로써 엠버엄마는 신데렐라에 이어 두 번째로 Cinder(재)를 자신에 이름으로 채택하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는 1940년대 일제가 조선 사람들의 성명을 일본식 씨명으로 바꾸게 한 역사를 떠오르게 한다.
그림책 ‘내 이름은 짐달라마시커미시카다’의 글작가 신디야 파라푸카란은 인도 집안 출신으로서 호주에서 인도계 호주인으로 살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책의 주인공이자 유색인종인 짐달라마시커미시카다는 백인 학교에 첫 등교를 하기도 전부터 상대적으로 긴 자신의 이름을 불편해한다. 작가는 주인공의 이 불편한 감정을 ‘구겨서 공으로 만들 수 있는 신발끈’, ‘백만 번쯤 접을 수 있는 종이’ 등에 비유하며 가능한 한 이름을 줄이고자 하는 주인공의 심경을 구체물로 잘 표현하였다. 그러나 주인공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처음 만나면 이름부터 묻는 주류집단 사람들의 질문에 ‘구기고’, ‘접어놓은’ 이름은 다시 ‘부우욱!’ 부풀고 터지고 펼쳐지고 만다. 그러다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백인친구 ‘엘리’를 만나면서 주인공은 자신의 이름을 짐달라마시커미시카다 대신 ‘짐’으로 줄이는 타협점을 찾는다. 집으로 돌아와 이름을 ‘짐’으로 바꿔도 되느냐고 묻는 주인공에게 엄마는 짐달라마시커미시카다라는 이름이 코코넛 나무와 연관되어 있다는 그 중요한 의미를 설명해주고 친구들도 주인공의 이름을 제대로 부를 수 있도록 하라는 조언을 한다.
주인공은 엘리에게 스케이트 보드 타는 법을 배우는데 주인공이 줄였던 자신의 이름을 서서히 늘리면 늘릴수록 스케이트보드도 더 잘 타게 되는 경험을 한다. 결정적으로, 주인공의 엄마는 코코넛이 재료로 들어가는 떡을 주인공과 엘리에게 제공하고 이를 먹은 짐은 스케이트 보드로 기존에는 잘 되지 않던 ‘제대로 한 바퀴 도는 묘기’에 성공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은 친구들에게 자신의 이름이 짐이 아니고 짐달라마시커미시카다라는 것을 소신 있게 말한다.
이주민 가족은 기본적으로 주류집단의 룰에 맞추고자 하는 욕구를 가질 수 있는데 이는 두 가지 중요한 논의점을 파생시킨다. 어느 한 경우에는, 주류집단의 룰에 맞추려는 노력이 이주민의 성공적인 안착과 계층상승에 기여하기도 한다. 과거에는 이를 ‘동화주의’로 부정적으로만 묘사한 역사가 있으나 최근 북미의 다문화 연구에 의하면, 주류집단의 룰을 거스르고 민족집단거주공동체(예: 코리안타운)에만 안주한다면 실질적인 계층상승 및 주류집단으로의 진입이 어렵다. 엘리가 짐달라마시커미시카다에게 스케이트 보드 타는 것을 제안하고 이에 주인공이 응하여 차차 배워나가는 과정은 주류집단의 룰을 받아들이고 이주민 가족이 점점 힘을 키워나가는 하나의 중요한 과정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한편, 이러한 주류집단 진출 과정에서 이주민이 자국에서 가져온 기존의 것을 얼마나 유지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가 남는다. 이에 대한 답은 그림책 ‘내 이름은 짐달라마시커미시카다’에서 찾을 수 있다. 주류집단을 배워나가는 과정에서 이주민의 정체성은 매우 중요하다. 이주민 집단의 정체성에 대한 확고하고 긍정적인 인식이 여러 영역에서의 성장과 발달에 도움된다는 점은 이미 고전적인 다문화 연구들에서 밝혀진지 오래다. 자신의 이름에 프라이드를 느끼고 코코넛 간식 등 전승문화를 유지하는 것은 주인공의 가족에게 반드시 필요한 요소였던 것이다.
문제는 이주민을 받아들이는 주류집단의 태도로 수렴된다. 필자가 서두에서 한국인들의 상대적으로 낮은 다문화 민감성을 언급하였듯, 결국은 이주민 가족에 대한 주류집단 구성원들의 섬세한 접근이 절실하다. 주인공이 자신의 이름에 대한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면, 엘리와 친구들에게도 주인공의 ‘짐달라마시커미시카다’라는 이름을 온전히 불러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최근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외국인 한글체험 ‘한글로 이름 쓰기’ 행사를 본 적이 있다. 서예 도구를 활용하여 외국인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한글로 써 보도록 하는 행사이다. ‘루시’, ‘장’ 등 상대적으로 짧은 이름도 있었지만 ‘아나스따시아’, ‘꾸비데스’ 등과 같이 한글로 풀어내려면 상대적으로 길어지는 이름도 다수 존재하였다. 그러나 필자는 제공된 종이가 긴 이름을 담아내기에 충분히 길지 않다고 느꼈고, 성(姓)과 이름을 모두 쓰기에는 더더욱 어려워보였다. 한국인의 이름은 성(姓)까지 포함해서 세 글자에 불과한 경우가 많으나 외국인의 이름을 한글로 쓰는 활동을 설계할 때에는 주최 측의 다문화 민감성이 보다 더 필요했던 것이다. 수년 전 초등학교 1학년 국어교과서 내 ‘친구의 이름’을 쓰는 활동지에서 다섯 칸을 제공한 사례를 본 적이 있는데 다섯 칸은 역시 부족하다. 같은 교과서 바로 뒷장에 ‘좋아하는 물건의 이름’을 쓰는 칸은 무려 여덟 칸이나 제공된 것을 보면 무언가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점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은은한 색상으로 등장인물들의 표정 묘사까지 섬세하게 묘사한 그림책 ‘내 이름은 짐달라마시커미시카다’는 ‘전승문화와 정체성의 유지’와 ‘주류집단 내에서의 성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고자 노력하는 수많은 비(非)주류집단 사회구성원들에게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암시적으로 제시한다. 이 그림책이 한국 내 주류집단 구성원들에게도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달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