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어느 날
글, 그림: 서선정
출판사: 향
출판일: 2023. 3. 20
서평: 서정숙(그림책과 어린이교육 연구소 소장, 네이버 ‘서정숙의 그림책 이야기’ 블로그 운영자)
「어느 날」은 아주 독특한 그림책입니다. 내용도 그림도 생소하여 신선한 충격을 주는 그림책이지요. 우선 앞표지 이미지부터 강렬해요. 꽃분홍색 제목 글씨에 곤충, 식충식물 그림이 궁금증을 유발해요. 게다가 책장을 위로 넘기는 상철 제본의 책이라 호기심을 더 끄네요.
내용을 좀 볼까요? 두 아이가 위, 아래 양쪽 펼침면에 그려진 횡단보도를 앞에 두고 반갑게 인사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한 아이는 헬멧을 쓰고 배낭에 낚싯대를 넣어 왔고, 다른 아이는 그런 준비 없이 만나 손을 흔들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횡단보도의 검은 줄과 흰 줄이 파도로 변하여 넘실대기 시작합니다.
이제부터 횡단보도는 상상의 세계로 가는 통로가 되어 두 아이를 생각지도 못하던 상상의 세계로 데리고 갑니다. 갑자기 길바닥은 바다가 되었고, 바다에는 온갖 물고기들이 넘쳐나요. 낚싯대를 챙겨온 아이가 물고기를 낚는가 싶었는데, 흑백의 파도는 꽈배기처럼 두 아이를 말기 시작하네요. 덕분에 둘은 곧 횡단보도 중간에서 만나게 되는 듯해요. 그런데 흑백의 횡단보도는 다시 높은 파도가 되어 솟아오르더니 이내 파도 사이로 대왕 문어가 출현합니다.
횡단보도를 건너려던 두 아이가 갑작스레 겪게 되는 기상천외한 판타지는 이런 식으로 계속 이어집니다. 문어의 빨판을 솔로 깨끗이 닦으니 거기서 오색의 풍선들이 나오고, 풍선을 타고 공중으로 떠오른 둘은 거의 만날 뻔했어요. 그러나 새들이 나타나 풍선을 터뜨리는 바람에 보도가 푹 꺼져 아이들은 그만 지하로 떨어져 내리네요. 이 지하 세계에 바로 앞표지에서 본 곤충이나 위험해 보이는 식충식물들이 가득하네요.
그러다 지하로부터 솟은 ‘펄럭이’의 도움으로 아이들은 드디어 만났고,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횡단보도를 간신히 빠져나오니 두 아이 앞에 새로운 상상의 세계인 ‘우주가 흐르는 동네’가 기다리고 있네요. 다음엔 또 어떤 상상의 세계가 펼쳐질지 기대하게 하면서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어느 날」이 보여주는 판타지는 작가 자신이 책 소개 글에서 말했듯이 “일상 속 빈틈 사이로 엿보이는 판타지”네요. 늘 다니는 횡단보도로부터 얼핏 느껴지는 영감이 이야기의 소재가 되었음이 역력합니다. 느닷없으면서도 기발하여 매료되네요. 흑백으로 표현된 위기의 장면들과 다채로운 색으로 표현된 위험에서 벗어난 장면들의 대조는 독자에게 긴장감과 안도감을 안겨주어 두 아이의 모험이 더욱 실감이 나요.
그리고 작가의 또 다른 말, “길을 하나 건너는 일은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일이다”는 「어느 날」이 단순한 상상 이야기가 아님을 잘 담아낸 말이지요. 횡단보도를 건너듯 건너편에 있는 길로 들어서는 일은 가보지 않은 길로 들어서는 일이기에 용기와 모험심이 필요할 수도 있고, 늘 가던 길이지만 새로운 날, 새로운 순간에 건너가는 일이기에 설렘이나 모종의 기대를 하게 하지요. 어린이들은 「어느 날」을 보면서 즐거운 상상 놀이를 하는 동시에 새로운 일에 대한 도전을 꿈꾸게 될지도 모르겠네요.
「어느 날」은 2022년 볼로냐 도서전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 선정 작품이고, 작가 서선정은 그동안 「차곡차곡」(2022년 볼로냐 라가치상 어메이징 북쉘프에 선정), 「이야기는 계속될 거야」에도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작가입니다. 창의적이면서도 보여주고자 하는 바가 분명한 그의 작품을 앞으로도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