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머리 위의 새
글, 그림: 로시오 아라야/ 번역: 김지연
출판사: 너와숲
발행일: 2023. 02. 15.
그림책 「머리 위의 새」는 스페인 작가 로시오 아라야가 2016년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 리스본 일러스트레이션 비엔날레에 선정된 작품으로 2023년 올해 우리나라에 번역, 소개되었습니다. 작가는 1982년생으로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2010년 교육학 석사과정을 마쳤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머리 위의 새」는 학교 교실 ‘공간’에서 수업 ‘시간’에 마주한 어린이 소피아와 길이가 긴 스커트를 입은 선생님의 대화를 보여주고 들려줍니다.
작가는 그림책을 시작하며 “아이들을 가르치는 어른, 그리고 어른들에게 또 다른 가르침을 선물해주는 어린이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라고 책이 담고 있는 목적을 밝힙니다. 아이들에게 ‘어떤 것’을 가르치려는 어른과, ‘무엇인가’ 선물하고픈 하는 어린이의 생각과 행동이 그림책 장면마다 말하듯 그려져 있습니다. 어린이 소피아와 어른 선생님의 생각이 무엇을 담고 있는지, 선생님의 시선과 소피아의 모습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작가는 독자로 하여금 화면의 그림을 한참씩 들여다보고, 함께 쓰인 글을 오랫동안 곱씹어 생각하게 합니다.
표지는, 알록달록 다섯 마리 새들이 길게 묶은 머리 정수리에 앉아있는, 빨간 블라우스 차림의 여자아이 뒷모습을 보여줍니다. 모눈종이나 여러 면을 잘라 덧붙이고 거칠게 색칠한 면에 주인공 눈을 보여주지 않으며 묘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킵니다. 한 장을 넘겨 만나는 면지 그림은 양면 가득 단일한 톤으로 희미하게 다양한 소재를 내비치며, 본문을 빨리 만나고 싶게 재촉합니다.
제목 면지, 또 다음 면지에도, 낡은 벽에 회칠한 듯 무심해 보이지만, 찬찬히 들여다 보면 어린 아이가 벽 위에 연필화를 그린 듯 섬세하게 그려진 그림들이 나타납니다. 가지가지 늘어선 꽃나무, 머리 위에 새 한 마리씩 얹고 있는 어른과 아이가 두 팔 벌려 꽃나무를 마주 잡고 있고, 꽃나무들 사이로 또 다른 둥근 얼굴과 여러 작은 새들이 보입니다. 붉은 톤 페인트를 입힌 듯, 긁어 문지른 듯, 독자를 초대하는 그림으로는 다소 의심스러운 성긴 분위기의 면지입니다.
다음 장에 이르러 드디어 작가의 메시지가 분명해집니다. “새 스무 마리가 있어.” 라며 푸른색 원피스드레스를 입은 여자아이 도자기 인형과 곳곳의 새들을 배경으로, 어른과 아이 모두에게 가르침을 선물하고 싶다는 메시지가 또렷합니다. 그리고 드디어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그림책 속 화자(話者)는 새 다섯 마리를 머리 위에 이고 있는 어린이입니다. 선생님은 안경을 쓰고 교과서를 내려다볼 뿐, 창문 밖을 보지 않습니다. 새 한 마리가 머리 위에 앉아있는 자그마한 소피아는 책상 앞에 앉아서, 큰 키에 눈금자를 들고 단호한 모습으로 서 있는 선생님께 수업내용과 상관없는 질문을 해도 되는지 묻습니다. 선생님은 소피아 머리 위의 새를 보며, 어떤 질문인지 되묻습니다.
습자연습을 아무리 해도 글씨가 ‘나아지지도 행복해지지도 않는데 왜 자꾸 반복해서 그림 그리듯 글자 끝을 이어야 하는지’, 한 번에 채우기에는 너무 큰데 선을 그어 둘로 나누어도 되는지, 방울방울 빗물을 떨어뜨리는 ‘구름의 크기를 (대)자로 잴 수 있는지’, 밤하늘에 빛나는 수많은 별을 관찰하면서 ‘무한대를 숫자로 표현할 수 있는지’, 자동차, 비행기, 큰 배, 작은 배 등등 타고 다니며 밝은 낮에도 어두운 밤에도 ‘어른들은 왜 늘 바쁜지’, 물구나무서기 하며 치마가 뒤집혀서 배꼽을 보이며 웃는 아이보다 곱고 단정하게 차려입은 ‘착하고 좋은 어린이’가 ‘행복할 수 있는지’, 내가 매일 급식 시간에 마시는 우유가 엄마소 젖이라는 걸 아기송아지가 아는지, 내 품안에서 동그랗게 몸을 말고 새근새근 잠들 수 있는 고양이를 왜 선생님은 낱낱이 부위를 나누어 설명하려 하는지, 수업내용과 상관없는 소피아의 질문은 끝없이 이어집니다.
어려운 글이 가득한 책 조각과 수학 공식이 가득한 조각 면, 그리고 넓게 양면 가득 그어진 점선 등을 내려다보며, 선생님은 소피아와 달리 여러 갈래의 길이 나타나도 ‘항상 같은 길을 선택하고’, 오븐 켤 때도 시간 계산하고 확인하듯이 ‘언제나 매순간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하고’, ‘비행기를 탈 때도’ 신문을 읽으며, 비행기 밖 하늘 이 초록빛인지 붉은빛인지 또 어떤 새가 들여다보는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지 않는다’고 답합니다. 그리고 … 비행기 창문을 통해 선생님을 바라보고 있는 그 새는 어쩌면 선생님 머리 위에 앉아야 할 …? 글쎄요 ….
선생님의 긴 대답을 듣는 순간, 소피아는 망설이지 않고 자기가 가지고 있던 많은 예쁜 새 중 한 마리를 선생님 머리 위에 나누어드립니다. 항상 아래를 향해 있거나 초점 없던 선생님의 두 눈이, 머리 위 새를 향해 크고 동그랗게 뜬 두 눈으로 변하며, 초록빛으로 가득 채워진 배경 속에서 선생님이 말씀하시네요. “오 고맙구나, 소피아.” 선생님이 당황하신 걸까요? 진심으로 고마우신 걸까요?
그림책의 마지막 장면은 텅빈 교실을 보여줍니다. 커다란 검은 칠판에는 알록달록 꽃 그림과 함께 “쉬는 시간 노는 시간”이란 메시지가 커다랗게 쓰여 있고, 모눈종이 무늬가 지워진 하얀 책상 앞에는 아무도 없이, 열린 교실문 밖으로 예쁜 새들이 조로롱 줄을 지어 날아가고 있네요. <옮긴이의 말>이 적힌 면지에 그려진 그림 속 여자아이는 …, 소피아일까요? 모눈종이 무늬 스커트를 입은 여자아이가 정제된 직선의 철제 침대 같은 발판을 딛고, 하늘 위 구름을 향해 손을 번쩍 들고 뛰어오르는 듯한 모습이 자유로워 보입니다.
그림책 「머리 위의 새」는 호기심 가득하고 궁금한 것 많고, 보이고 안 보이는 이 세상 모든 것이 새롭고 반가운, 어린이들을 보여줍니다. 어린이를 만나 새롭게 빛날 미래를 그리며 오늘을 함께 숨 쉬고 탐구하며 기쁘게 미소 지어야 할 선생님을 그리워하는 「머리 위의 새」 그림책입니다. 과연 2023년 지금, 우리 어린이와 선생님이 머물고 있는 교실과 운동장에는, 호기심에 찬 반짝이는 눈빛과 궁금함을 향해 다가가는 설레임, 신나게 뛰고 땀에 젖어 돌아와 흥분에 찬 열기로 나누는 미소와 재잘거림, 친구들 때로는 선생님과 나누는 서로의 따뜻한 배려가 가득할까요? 선생님과 부모 우리 모두 옛 시절 머리 위에 예쁜 새 가득 싣고 있던 어린이였음을 기억하고, 지금 우리 앞 어린이들 머리 위 새들과 함께 나날이 새로운 세상 날아오르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