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두더지의 여름
글, 그림: 김상근
출판사: 사계절
발행일: 2022. 8. 5.
서평: 김세희 (본 학회 전임회장, KBBY 전임회장)
아직 여름의 더위가 남아있지만 아침시간의 선선함에 이미 가을이 우리 곁에 와 있다고 느끼게 된다. 이즈음 우리는 지난여름 무엇을 했는지 돌아보게 된다.
어느 여름날 주인공 두더지는 거북이를 만나 바다에 데려다주는 큰 과업을 수행한다. 이 두더지는 두더지들의 주특기인 땅파기는 별로 잘하지도 좋아하지도 않고 두려워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두더지는 거북이와 안전한 길로 바다에 가기 위해 땅을 파야만 한다. 파도소리에 바다인가 했더니 곰들의 목욕탕, 바다 냄새인가 했더니 수영장, 그리고 다음은 분수에 계속 헛발을 디딘다.
고생 끝에 드디어 바다에 도착한 두더지와 거북이는 고래도 만나고 여름 해변과 바다를 즐긴다. 두더지는 거북이를 바다에 두고 숲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둘은 지는 해를 함께 바라본 뒤 두더지는 슬픈 마음으로 거북이와 작별인사를 한다. 거북이에게서 그동안 한마디 말도 들어보지 못한 두더지는 그 순간 처음으로 아주 작고 조금 느린 거북이의 말을 듣는다.
“나도... 바다가 처음이야.
너랑 만난 숲에 살아.
오늘 정말 재밌었어.
고마워, 두더지야.”
둘은 헤어지지 않고 진짜 친구가 되어 둘이 처음 만났던 숲으로 돌아가게 된다. 거북이를 데려다주기 위해 열심히 땅을 판 거북이는 그동안 발전한 땅파기 실력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고 행복한 발걸음을 내딛는다.
녹색 계열의 숲에서 시작한 여름풍경은 바다를 찾아가면서 푸른 물의 수영장, 시원하게 솟아오르는 분수를 지나 넓고 푸른 바다풍경으로 바뀐다. 숲에서 바다로 밤색 계열의 땅속과 대비되며 전체적으로 여름을 한껏 느낄 수 있는 그림책이다. 이 그림책은 전체적으로 그림이 깔끔하며 글이 적다. 해지는 붉은 하늘과 남은 햇빛에 금빛으로 찰랑이는 아름다운 바다 풍경을 두더지와 거북이가 함께 바라보는 장면은 이 그림책의 압권이다. 솟아오르는 분수장면을 수직장면으로 구성한 재치도 눈에 띈다. 마지막 장면에서 두더지와 거북이가 도착한 곳이 숲이 아니라 바다로 가는 길에 잘못 들렀던 곰의 목욕탕이며, 바닥에서 얼굴을 뾰족 내민 두더지와 거북이를 보며 귀가 길도 순탄치 않을 거란 생각에 웃음이 난다.
처음에 두더지는 거북이가 길을 잃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건 ‘거북이는 바다에 산다’는 두더지의 선입견 때문이었다. 두더지는 거북이의 이야기를 들어보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결정했고 바다를 향해 출발하여 우여곡절 끝에 바다에 도착한다. 전화위복으로 두더지는 친구도 얻고 땅파기 실력도 늘었지만 말이다.
김상근 작가는 <두더지의 고민>, <두더지의 소원>에서 겨울이야기를 들려주었다면 이 그림책에서 여름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한편 세 그림책은 친구 만들기에 관한 이야기라는 공통점이 있다. 눈 굴리기를 하면서 여러 친구를 만나는 <두더지의 고민>, 눈사람을 친구로 함께 하려하지만 여의치 않았던 <두더지의 소원>이 있었다면, 두더지는 <두더지의 여름>에서 이제야 마음이 오가는 또 먼 길을 동행할 수 있는 진짜 친구를 얻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