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나 여기 있어요
글,그림: 원혜영
출판사: 위즈덤하우스
출판일: 2022. 4. 5
서평: 서정숙(그림책과 어린이교육 연구소 소장, 네이버 ‘서정숙의 그림책 이야기’ 블로그 운영자)
어린이들과 반려동물 키우기나 반려동물의 죽음, 로드킬에 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며 감상하기에 좋은 그림책이 있어서 소개하고자 합니다.
「나 여기 있어요」는 한겨울 눈이 펑펑 쏟아지는 길의 풍경에서 시작됩니다. 앞이 제대로 안 보일 정도로 굵은 함박눈이 내리는 길에 아기 고양이 한 마리가 쓰러져 있어요. 아무도 오가지 않는 외진 눈길, 아기 고양이의 안위가 걱정됩니다. 아기 고양이는 누군가를 기다립니다.
이때, 노란 호롱불을 앞세우고 까만색 갓을 쓴 곰 아저씨가 나타나요. 그의 모습이 예사롭지 않네요. 그는 누구일까요? 미소를 머금은 곰이 아기 고양이를 살며시 손에 올리자 고양이는 다시 살아났고, 주위는 노란색으로 빛납니다.
곰 아저씨는 아기 고양이를 어딘가로 데리고 갑니다. 마치 아빠 곰이 아기곰에게 하듯 다정하게 고양이를 어깨에 앉히기도 하고, 자전거에 태우기도 하고, 다른 고양이 친구들과 놀리기도 하면서 잘 데리고 갑니다. 검푸른 강을 건널 때는 사나운 파도로부터 보호해주고, 고양이가 하고 싶다는 것은 다 할 수 있게 해주면서 데리고 갑니다. 그리고 아기 고양이는 보고 싶은 엄마 고양이도 만납니다. 엄마의 등에 업혀 행복해하는 아기 고양이의 모습을 보고서야 내내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감상하던 독자는 마음이 놓입니다.
그런데, 곰 아저씨는 이때 종을 흔드네요. 그러자 그 소리에 새들이 나타났고, 곰 아저씨는 아기 고양이를 데리고 다시 길을 떠나요. 아기 고양이는 엄마를 만났는데 어디로 가는 걸까요? 곰 아저씨는 아기 고양이의 엄마를 찾아주려고 한 게 아니었나요? 그럼 갓을 쓰고 호롱불을 들고 나타난 곰 아저씨는 도대체 누구인가요?
˹나 여기 있어요˼는 눈이 오는 겨울 길에 죽은 채 누워있던 아기 고양이를, 작가가 창조한 곰 아저씨로 분한 저승사자가 사후 세계로 안내하는 모습을 담고 있는 그림책입니다. 아기 고양이가 주검이 되어 기다리고 있던 인물은 저승사자였고, 저승사자가 고양이의 영혼을 안전하게 데리고 갔기에 두텁게 싸인 눈길에는 작은 웅덩이 같은 흔적이 패인 것이었네요. 그가 안전하게 사후 세계로 갔음을 나타내는 것이지요.
책에 실린 작가 소개 내용에서 원혜영은 작은 생명의 소중함을 전하는 따뜻한 이야기를 그리고 싶은 작가라고 밝히고 있어요. 이번 ˹나 여기 있어요˼를 통해 작가는 차가운 도로 위에서 쓸쓸하게 떠나는 동물들이 저세상으로 가는 길에서는 부디 외롭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담고 싶었다고 합니다.
작가는 자신의 그런 의도를 목탄 그림으로 잘 담아내고 있네요. 쏟아지는 함박눈도, 흑백 그림 속 노란 호롱불이나 꽃길도 목탄 그림과 조화롭게 어우러지니 비록 아기 고양이의 죽음이 가엾은 안타깝고 애처롭지만 그렇다고 슬프기만 하진 않아요. 작가와 독자가 하나 되어 잔잔한 진혼곡을 들려주며 아기 고양이를 애도할 수 있게 해주는 그림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