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돌을 다듬는 마음
글: 코비 야마다/ 그림: 엘리스 허스트/ 옮김: 김여진
출판사: 상상의힘발행일: 2022. 05. 02.
서평: 정대련(동덕여자대학교)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조각하지? 나는 절대 이렇게는 못 만들 거야. 그냥 알아. 이토록 아름다운 걸 조각할 때는 어떤 기분이 들까? 그냥 보기만 하는 게 나아. 최소한 망칠 일은 없으니까.
처음 조각을 시작할 때는 설렘에 굉장히 가슴 떨렸지. 하지만 돌을 깎을 때마다 실망이 커지고, 결국 난 이 일을 너무도 쉽게 생각했음을 되새겨야 했어. 그래도 나는 또 시도했고, 보란 듯이 실패했어. 그런데 나더러 또 해 보라고? 돌을 다듬고 한참을 더 다듬어, 지긋지긋해지고, 지금 내가 뭘 만드는지도 모르겠는 시점이 오도록, 그래도 다시 돌을 내려치고. 매만지고, 쉬지 않고 다듬었지.
그때가 되어서야 조각가는 말했지. 그도 수없이 많이 실패했었다고. 조각가가 세상을 떠난 지 몇 년이 흘렀어도, 우리의 대화, 그의 가르침은 절대 잊히지 않을 거야. “기꺼이 실패할 수 있다면, 마침내 성공할 수 있다네.”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실패할 때마다 우리는 조금 더 현명해지고, 더 용감해지고, 더 강해지지. 우리는 모두 실패자, 꿈꾸고, 행동하고, 창조하는 사람들이라면 모두 실패자가 되지. 다만 무언가를 뜨겁게 사랑하고, 온 마음을 주고, 한 발자국 나아가며, 물러서지 않고, 버티는 길이 우리가 할 일이야.
그림책 「돌을 다듬는 마음」의 글작가 코비 야마다 (Kobi Yamada)는 『뉴욕타임스』의 베스트셀러 작가로서, 영감에 가득 찬 수많은 책을 쓰며, 회사 컴펜디움을 설립하여 ‘놀라운 사람들이 모여 놀라운 일들을 시도’하는 최고경영자(CEO)라고 합니다. ‘태평양 북서쪽에서 유쾌한 가족과 함께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는 작가 소개의 밝은 톤과는 대조적으로, 이번 작품에서 코비 야마다는 육중한 돌을 깎는 조각가의 치열하고 지난한 삶의 시간을 차분하고 담담하게 대화체 글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그림책 글 속에서 ‘자네’로 지칭되는 주인공은 아이인 듯, 소년인 듯, 청년인 듯 묘사되는 굵은 곱슬머리 결을 가진 여린 모습의 작은 남자입니다. 상대 주인공인 늙은 조각가에게서는 청년을 바라보는 따뜻한 눈길과 그를 인도하는 배려 깊은 손길이 느껴집니다. 기다림의 철학을, 인내하는 삶의 진리를, 돌을 깎는 오랜 각고의 노력이 마침내 절대적인 영감의 현현(顯現)에 이르는 만남을, 반복되는 대화로 풀어내며, 글작가는 회의에 찬 끝없는 질문 속에 숨겨진 절박한 젊은 열정에 대해 한 발자국씩 다음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숨겨진 길을 조금씩 열어 보이며 이끌어갑니다. 아름답고 가치 있는 일에 도전해 볼 용기가 있건 없건 시간은 흘러가는 법,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길만이 우리가 할 일이란 진리를 전하고 있는 거지요.
그림작가 엘리스 허스트 (Elise Hurst)는 화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로서 어린이책을 주로 쓰고 그리는 작가입니다. 허스트는 코비 야마다의 글을 만나 흑백을 기조로 한 그림으로, 거대하고 차갑고 투박한 대리석을 조각하는 과정을, 아틀리에와 아름다운 푸르른 숲속 가득 채운 유·무형의 조각 작품들을, 무심한 듯 대담한 붓 터치와 흐린 듯 부드럽고 섬세한 펜의 긁힘 선으로 그려 보이며, 무한한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넓은 흰 여백과 함께 그림책 화면을 꽉차 보이도록 채우는 마력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흑백 수묵화인 듯 보이는 화면 구성 사이로 간간이 숨어 발견하는 기쁨을 주는 고양이와 소품들의 노란빛 도는 갈색 터치, 늙은 조각가를 중심으로 발견되는 수채물감 느낌의 투명한 에메랄드빛 포인트, 주인공의 차가운 회의와 질풍노도의 젊음을 대신하는 깊은 바다 남청빛 색조가 어우러져, 회색빛 돌 조각에 혼이 실리는 과정이 화폭 가득히 펼쳐지고 있습니다.
마지막 장에 이르러, 긴 머릿결을 가진 여자아이의 시선을 통해 작가는 또다시 묻습니다. 오래전 “도대체 어떻게 한 거지?”를 물었던 주인공이, 지난날 마스터 조각가가 그러했듯이, 흐르는 세월 넘어 이제는 높은 사다리에 올라 거대한 대리석을 다듬고 있는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며 또 하나의 이야기를 이어갈 새로운 주인공이 나타나 “나도 할 수 있을까?”라고 묻습니다. 어쩌면 마스터가 된 소년 주인공의 목소리가 들릴 듯합니다. “기꺼이 실패할 수 있다면, 마침내 성공할 수 있다네.”라고. 그리고 아이가, 소녀가, 패기에 찬 그녀가 훗날 그곳에서 그 말을 듣기까지 대리석에 빗댄 조각칼을 망치로 쉼 없이 두드리고 또 두드리며, 회의하고 고뇌하고 또다시 열망하며 나아가는 시간을 걷고 있는 모습이 보이는 듯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