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여름방학
글그림: 강현선
출판사: 사계절출판사
발행일: 2021.08.31.
서평: 이창기(창원대학교 유아교육과)
「여름방학」은 글 없는 그림책에 가깝지만, 만화의 컷처럼 연속되는 이미지와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유일한 글귀, ‘여름방학이 끝났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속표지의 저자의 설명글 “10여년 전 아프리카에서 열린 월드컵을 보며 그림책을 떠올렸습니다. 피부색이 다른 아이들이 하나가 되는 아름다운 풍경을 그리고 싶었습니다”를 통해 작가의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첫 속표지에 등장한 버스 한 대는 이색적인 수목이 어우러진 산길과 들길을 지나 목적지에 다다르며 이 과정에서 버스는 점점 클로즈업된다. 목적지에 멈추어 선 버스에서는 몇몇의 아이들이 자신의 소지품을 챙겨서 나오고 아이들 중 한 명은 도보로 이동하는 중에도 드리블을 하듯 자신이 가지고 온 공을 컨트롤한다. 현지 아이로 추정되는 한 아이가 수풀 속에서 아이들의 행렬을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이 아이는 버스에서 내린 아이들과는 피부색이 다르다. 현지 아이 몇 명이 나무 위에서 버스에서 내린 아이들을 바라보는 장면이 이어지고 여기서 독자는 현지 아이들의 수와 버스에서 내린 아이들의 수가 비슷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버스에서 내린 아이들은 공차기를 시작하는데 수풀 속에 있던 현지 아이가 날라 온 공에 넘어지면서 두 그룹의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만나게 된다. 두 그룹은 함께 공차기를 하는데 서로 달랐던 서로의 피부색은 공차기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서로 비슷해져간다. ‘여름방학이 끝났습니다’라는 글귀가 등장하는 마지막 장면에 다다랐을 때 버스에서 내린 아이들과 현지 아이들 사이의 ‘다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학교 맥락에서의 ‘여름방학’은 학생들이 잠시 학업을 내려놓고 여행, 체험, 봉사활동 등 다양한 경험을 하는 시간이라는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 즉, 이 여름방학이란 것은 단순한 여가의 개념을 넘어서 교양이나 비교과의 차원의 뭔가 특별하고도 색다른 경험을 하는, 의미 있는 배움의 시간으로 활용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 이야기에 나오는 아이들은 피부색과 관계없이 함께 놀이를 하다 보면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중요한 가치를 배웠을 것이고, 이것이 바로 ‘여름방학의 끝’에 얻을 수 있는 하나의 결실이었을 것이다.
작가는 작가만의 섬세하고도 독특한 이미지 묘사로써 이러한 메시지 잘 전달하고 있다. 첫째, 이야기에 등장하는 모든 아이들의 옷은 생략되어 있다. 아이들의 소지품은 빨간색, 노란색, 초록색 등으로 정확하게 묘사가 되었으나 의류는 모두 흰색으로 배경색과 같다. 아마도 저자는 인물 묘사에서 피부색을 강조하고자 하였을 것이며, 피부색을 제외한 모든 것이 같다는 점을 ‘생략의 미’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였을 것이다. 이로써 작가는 두 집단의 아이들이 옷뿐만 아니라 국적, 성별, 외모, 계층, 연령 등과 관계없이 모두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암시하였다. 둘째, 원근법을 사용하여 때로는 가까이서, 때로는 멀리서 두 그룹의 아이들에게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을 바라보았다. 카메라의 앵글을 밀고 당기기를 거듭하지만 후반부에서 석양이 드리우기 시작하면서 시점은 점점 멀어져가며 모든 아이들의 피부색은 완전히 같아진다. 여기서도 피부색을 제외한 모든 조건을 동일하게 설정한 작가의 의도가 드러난다. 아마도 작가는 2010 남아공월드컵에서 치러진 축구경기에서 선수들에게 석양이 드리울 때 모든 선수들이 태양빛에 반사되면서 팀의 구분이 사라진 것처럼 보였던 경험을 그림책으로 담아내고자 했을 것이다.
월드컵은 ‘지구촌이 하나가 되는 장’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작가는 그림책을 통해 이를 구체화하였다. 다가오는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도 모두가 하나되는 멋진 장면들이 다양하게 연출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