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완벽한 로봇강아지 톨
글그림: 세도나 / 옮김:
출판사: 느림보
발행일: 2021.09.30.
서평: 이창기(창원대학교 유아교육과)
어린 시절부터 우리는 SF영화나 공상과학소설을 통해 인류가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이나 로봇과 함께 생활할 미래 세계에 대하여 한 번쯤 상상해보며 성장하였다. 그러나 2022년을 앞둔 오늘날, 인공지능과 로봇은 이미 우리의 삶 구석구석에 침투하여 4차 산업 혁명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체감하게 한다. 개인의 사고만을 기계가 담당하던 3차 산업 시대에서 한 뼘 더 나아가 4차 산업 시대에서는 인간집단 전체의 사고를 기계가 대신한다. 이에, 기록이나 데이터 저장을 기계에 위탁하는 정도를 넘어서서 인류는 테크놀로지의 진보에 힘입어 기계와 기계 간의 상호작용까지 허용하게 되었고, 기존과는 차원이 다른 인공지능의 시대를 맞이한 것이다. 「완벽한 로봇강아지 톨」은 이러한 놀라운 과학기술의 발전 속에서 인류가 간과할 수 있는 중요한 가치들을 일깨워주며 인공지능 시대에 들어선 우리에게 경각심을 가지게 한다.
로봇에 의해 로봇강아지가 제조되는 그림책의 속표지 그림으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 로봇강아지는 또 다른 어떤 로봇에 의해 지우네 집에 배달된다. 톨이란 이름을 가진 이 로봇강아지는 지우네 반려견 별이의 놀이친구로서 ‘별이를 위해’ 배달된 것이지만 실제로는 이와 관계없는, 그 이상의 역할을 담당하기 시작한다. 톨은 지우의 수학 숙제 도와주기, 지우와 공놀이 하기, 지우엄마와 티타임 가지기, 지우아빠를 도와 세차하기 등 지우네 가족구성원에게 편의를 제공한다. 톨의 활약으로 인해 반려견 별이의 입지는 점점 좁아져 간다. 별이가 실례한 배설물을 톨이가 치우고 별이가 시끄럽게 짖으면 톨은 별이의 입을 묶어버린다. 말 그대로 주객이 전도된 상황에서 별이는 조용하지도 깨끗하지도 똑똑하지도 않은 것으로 간주되어 집 밖 마당에서 살도록 내쫓기는 처분을 당한다. 이제 톨은 지우 엄마와 아빠, 그리고 지우의 생활 전반에 대한 조언을 해주는 수준에 이르게 된다.
얼핏 보기에는 기존 반려견이 로봇견으로 대체되면서 인간의 삶이 보다 윤택해 진 것으로 보일지 모르겠으나, 이어지는 이야기를 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지우네 가족은 집에 별이와 톨만 남겨두고 톨이 제조된 회사 오토마톤으로 여행을 다녀온다. 그 사이 톨은 컴퓨터 앞에서 또 다른 제품들을 검색하여 배송주문을 한다. 열흘 후에 집으로 돌아온 지우네 가족은 굳게 걸어 잠긴 대문에 ‘완벽하지 못한 주인은 집 밖에 있어야 해! -톨-’이라는 현관 메모를 발견하게 된다. 알고 보니, 톨은 아빠, 엄마, 지우의 모습을 한 로봇들로 집 안을 채우고 반려견 별이를 포함한 모든 가족구성원을 집 밖 마당으로 내쫓는 것으로 처리해 놓았던 것이다. 마지막 속표지에는 아빠, 엄마, 지우의 모습을 한 그 로봇들이 제조되던 장면이 그려져 있다. 이 짧지만 의미심장한 이야기는 우리에게 로봇과 인공지능의 편의성 이면에 존재하는 위험성을 알려주는데 그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로봇(이하, 기계)과 인공지능은 인류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기계가 똑똑해지면 똑똑해질수록 인간의 통제권을 벗어날 가능성도 그만큼 커진다는 것이다. 우리는 ‘터미네이터 시리즈’나 ‘엑스 마키나’ 등 여러 SF영화를 통해 이러한 점을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었다. 보다 지능적인 기계가 만들어진다는 것은 인간이 기계에게 그만큼 많은 권한을 위임한다는 뜻이 된다. 그러나 지나친 권한의 위임은 기계가 인류의 통제를 벗어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로봇강아지 톨은 제품이 배송될 때부터 매우 위험한 기능 하나를 가지고 있었다. 제품에는 ‘주인이 원하면 자동으로 지능이 점점 더 높아지는’ 이라는 태그가 달려서 온 것이다. 로봇이 스스로 학습할 수 있다는 이 기능 덕에 지우네 가족은 다양한 편의를 누렸지만 결국 이 기능은 그들에게 독이 되어 돌아온다. ‘반려견을 대체할 수 있는 로봇이 있다면 기존 반려견을 집 밖으로 내쫓아 앞마당에 살게 할 수 있다’는 이 무서운 발상의 출처는 지우네 가족이었다. 톨은 지우네 가족으로부터 이를 학습하였고, 이들이 여행을 떠난 사이에 새로이 학습한 이 ‘도식’을 바로 실제에 적용한 것이다. 이 장면은 자녀양육을 편하게 하기 위해 미국의 일부 부모들이 영상매체를 과도하게 사용하여 결국 아이들을 비디오증후군으로 내몰았던 지난날을 떠올리게 한다. 이 또한 편의성만을 좇다가 기계에 인간의 권한을 과도하게 위임한 결과였다.
둘째, 기계가 24시간 일할 수 있고, 일에 대한 불평을 하지 않으며, 임금을 주지 않아도 된다는 기업경영자의 3가지의 마인드셋이 실질적으로는 고스란히 3가지 역효과로 되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먼저, 기계가 24시간 일을 할 수 있다는 점은 기계가 휴식이나 여가와 같은 생명체들의 고유 속성을 가지지 못하여 사람들이 쉴 때 기계는 휴식에 가담하지 않는다는 뜻이 된다. 지우 가족이 여행을 떠나 일종의 휴식을 가지는 동안 로봇강아지 톨은 휴식 대신 일을 계속하였고, 결국은 지우네 가족을 보다 효율적인 가족구성원으로 대체하는 일을 벌였던 것이다. 또한, 일에 대한 불평을 하지 않는다는 점은 기계로부터 감정(feeling)이나 정서(emotion)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뜻이 된다. 톨의 고향을 방문하는 지우네 가족은 여행의 테마도 톨이었고 여행 내내 톨에 대한 지속적인 애정과 사랑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는 완전한 짝사랑이었음이 귀가 이후 밝혀진다. 기계는 사랑이라는 개념 조차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그저 더 효율적인 것만을 추구하는 비인간적인 시스템이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기계에게 임금을 주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 대해서 우리는 ‘세상에 공짜는 없다’라는 점을 배우게 된다. 겉보기상으로는 기계가 무료로 일을 해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인간은 결국 그 모든 대가를 치르게 된다. 편의성을 가져다주는 기계에게 인간은 점점 과의존하게 되어 기존에 영위하였던 가치들을 하나둘씩 잃어버리게 된다. 사실, 기존 반려견 별이에게는 로봇강아지 톨에게는 없는 애정과 사랑의 요소를 가지고 있었다. 별이는 지우네 가족이 여행 떠날 때 컹컹 우는 애착행동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반갑다고 꼬리를 치는 등 주인에 대한 무조건적인 애정과 사랑을 보여주었다. 반면, 로봇강아지 톨은 주인을 바꾸기로 마음먹은 후부터 마중을 나오던 기존의 행동을 철회하고 결국 주인을 배신한 셈이 되었다. ‘배신’이라는 말도 다분히 인간중심적인 용어로서 로봇의 세계에서는 이러한 행위가 배신이란 개념을 설명되지 않을 수도 있다. 이 장면은 SF영화 ‘엑스 마키나’의 마지막 장면을 떠오르게 한다.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기계나 인공지능은 주어진 상황에 대하여 기계만의 필요에 의해 스스로 ‘판단’을 하게 될 것이며, 이 판단은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기본상식을 배제한 채 매우 비인간적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