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소꿉놀이가 끝나면
글: 황선미 / 그림: 김동성
출판사: 사계절
출판일: 2021. 7. 23.
서평: 김세희 (KBBY 전임회장)
‘심심하고 가엾은’ 아니 심심해서 가엾은 연지는 비 온 뒤 나타난 무지개를 만나러 집을 나선다. 하지만 무지개는 흐릿해지다가 이내 사라져버린다. 대신 연지는 동갑내기 지오를 만난다. 비가 많이 와서 지오가 다리를 건너오지 못하는 날만 빼고 연지와 지오는 날마다 날마다 만나서 놀게 된다. 연지와 지오는 살구나무 밑에서 살구도 모으고 냇가에도 가며, 지오는 연지에게 야생화 이름을 가르쳐주고, 연지는 지오에게 옛날이야기를 해준다.
지오를 만날 수 없는 비오는 날에도 연지는 이제 외롭지 않고 행복하다. 왜냐하면 지오를 만나 해줄 이야기를 쌓고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행복한 연지 얼굴 뒤편 배경으로 존 버닝햄의 <알도> 그림이 보인다. 지오는 연지에게 알도와 같은 상상의 친구일까? 알도와 어깨동무하고 있는 소녀 그림 아래 연지의 놀이감도 주룩주룩 내리는 빗속에서 무지개의 빛깔을 띠고 있다. 지오와의 놀이도 아름답게 뜨고 사라지는 무지개 같은 것일까?
연지는 어미 잃은 새끼 쥐에게 “너무 슬퍼서 감기에 걸렸네요”하고 주사를 놓고, 인형에게는 “너무너무 심심해서 감기에 걸렸어요”하며 자신의 마음을 인형에게 투사한다. 연지와 지오의 상상놀이와 역할놀이는 신랑과 신부의 결혼식 놀이에서 절정을 이룬다. 연지와 지오의 성대한 피크닉 장면, 종이비행기를 날리러 달려가는 장면, 그늘나무 한 바퀴를 돌며 결혼행진곡을 부르는 장면은 판타지 그림책의 클라이맥스 장면에서 전형적으로 사용되는 글 없는 펼침면으로 되어 있다.
행운과 불행은 함께 손잡고 오는 것일까? 며느리배꼽 열매를 보는 행운과 지오를 잃는 불행은 같은 날 왔다. 그래서 어르신들은 행운에 너무 기뻐하지 말고 불행에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하셨던가? 여섯 살짜리들의 실감나는 소꿉놀이의 재료로 선택된 자연물 물고기였지만, 연지가 쥔 칼 밑에서 파르르 떠는 물고기에 연지와 지오는 너무나 놀랐고, 그들의 소꿉놀이도 끝이 난다. 연지와 지오의 놀라고 당황하는 얼굴이 확대된 인물사진처럼 양 페이지에 클로즈업된다. 연지는 여섯 살 때는 확실히 알 수 없었지만 뭔가 잘못했다는 느낌을 받았던 일을, 열두 살이 되어서야 “미안해, 물고기야....”하고 당시 스스럼없이 생명을 해하려 했던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지오와의 시간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기억한다.
또래 친구를 만들어준다고 동성의 형제, 자매를 낳아 길러준 부모의 배려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동생을 배제하곤 하는 형과 언니의 전형적인 모습이 이 그림책에서도 드러난다. 연지가 여섯 살 때 열두 살인 연지의 언니는 연지와 놀아주지 않고 연지를 심심하고 가엾게 버려두더니, 연지가 열두 살이 되었을 때조차 언니는 연지를 어린애 취급하며 지오와의 기억을 꿈이라며 무시한다.
황선미 작가의 따뜻하고 섬세한 글과 김동성 작가의 깔끔하고 아름다운 그림의 조합은 가히 완벽하다. 황선미 작가는 이야기줄거리 이면에서 소곤소곤 많은 이야기를 전해준다. 아이들의 얼굴 표정과 움직임을 사진보다도 더 잘 표현하는 김동성 작가의 그림을 그림책에서 또다시 볼 수 있어서 행복하다.
이 그림책은 유아들이 이해하기에는 어렵지 않을까, 혹은 어른을 위한 그림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연지가 여섯 살 때 물고기에게서 느꼈던 감정을 열두 살이 되었을 때 분명히 깨달은 것처럼, 유아들이 이 그림책이 주는 메시지를 완벽히 소화하지는 못할지라도 연지와 지오의 자연 속에서의 따뜻한 일상과 이 그림책의 촉촉한 분위기를 충분히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요즈음 소나기를 퍼붓다가 개었다가를 분주히 오가는 하늘 아래서 무지개에 얽힌 놀이와 성장을 다룬 이 그림책을 펼쳐 볼 수 있어 참으로 감사하다. 비 온 뒤 하늘에 뜬 무지개를 따라, 무지개가 시작된 곳을 찾아가는 두 갈래 머리 소녀의 모습을 담은 앞표지 3컷과 뒤표지 1컷의 연속 그림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