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끼인 날
글·그림: 김고은
출판사: 천개의바람
출판일: 2021. 4. 1.
서평: 서정숙(그림책과 어린이교육 연구소 소장)
김고은의 그림책에는 엉뚱하면서 발랄한 상상력, 세세하고 풍부한 유머, 그러면서도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제를 독자에게 와닿게 하는 흡인력이 있다. 작가가 앞서 내놓은 「딸꾹질」, 「눈행성」, 「우리 가족 납치사건」 등에서 보여준 바가 그러하다.
이번 그림책, 「끼인 날」 역시 앞표지에 그려진 주인공 여자아이의 모습부터 코믹하다. 단발머리에, 앞머리를 일자로 자른 여자아이가 양쪽에서 밀려오는 무엇인가의 사이에 낀 상태에서 양팔과 양다리를 힘껏 벌려 이에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모습이다. 독자 쪽을 향한 아이의 얼굴을 보면, 양 볼과 입은 무엇인가에 끼인 채 가운데로 몰려 있고, 이런 상황에 놀란 듯 아이의 눈은 한껏 커져 있다. 아이는 무엇에 끼어있는 걸까? 어쩌다 끼었을까? 어떻게 나올 수 있을까? 여러 궁금증을 유발하는 앞표지라 독자들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내용은 7일간 일어난 일로 구성되어 있다. 주인공은 어딘가에 끼어있는 누군가를 꺼내 구출해주는 해결사 역할을 한다. 지붕 위에서 낮잠을 자다 구름 사이에 낀 개를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데리고 내려온다. 슈퍼 할머니의 이마 주름에 주둥이가 낀 모기를 구하기 위해 할머니의 주름살을 손가락으로 벌린다. 맨홀 구멍에 부리가 낀 펭귄을 꼭 안아서 빼 준다. 이런 식이다. 그밖에 쓰레기통에 낀 곰, 아저씨 엉덩이 사이에 낀 스컹크, 축구 골대 그물에 다리가 낀 대왕문어 등, 자못 엉뚱한 장소에 등장하는 예기치 못한 인물, 그들이 처한 상황으로 인해 입가에 절로 웃음이 번진다.
여기저기 사이에 낀 인물들을 구하느라 지쳐서 집에 돌아오니 엄마와 아빠가 서로를 탓하고 소리 지르면서 싸우고 있다. 엄마와 아빠가 상대를 향해 내지르는 불만 사항들은 민망할 정도로 유치하기 짝이 없지만 그만큼 실제 부부싸움을 접하듯 사실성이 엿보인다. 그렇기에 이 장면에서 어린이 독자들은 어쩌면 자기 부모의 모습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그런데 바로 이때, 우리의 해결사인 주인공은 엄마 아빠 사이에 끼어있는 뭔가를 발견한다. 그것은 ‘싸움 요정’이다. 엄마 아빠가 싸우는 건 그들 사이에 싸움 요정이 끼어있기 때문이란다! 이어서 주인공은 싸움 요정들을 엄마 아빠로부터 빼내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부탁, 으름장, 회유, 갖은 방법을 써도 나오지 않는 싸움 요정을 어떻게 빼내면 좋을까?(그 방법은 직접 책을 통해 확인하시길) 읽어주는 대상이 유아라면 이 지점에서 그들의 생각을 들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싸움 요정의 발견과 싸움 요정을 내쫓아 가정의 평화를 이루는 결말이야말로 작가의 엉뚱하면서도 기발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싸움 요정의 출현과 퇴출 방법은 동심이 깃든 발상이기에 어린이 독자들의 흥미를 끌 수 있을 뿐 아니라, 전체 이야기와 조화(특히, 어딘가에 끼어 힘들어하는 생명을 보면 어떻게 해서든 구해주는 따뜻한 마음씨의 주인공 캐릭터와의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안정적으로 이야기를 끝내는 결말 장치로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