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잠잘 시간
글: 프로데 그뤼텐 / 그림: 마리 칸스타 욘센
출판사: 책빛
발행일: 2021. 01. 30
서평: 김은심(강릉원주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
잠들기 전 아빠와 아이가 함께하는 시간을 흥미롭게 그려낸 프로데 그뤼텐(글)과 마리 칸스타 욘센(그림)의 ‘잠잘 시간(Bedtime)’은 수많은 부모들의 공감을 얻어낼 것 같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밤마다 잠을 자지 않으려 하는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다 깜박 잠이 들기도 했던 기억을 공유하는 부모가 다수이기 때문이겠지요. 개인적으로 아이를 기르며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대부분의 양육서에서 제시하고 있는 ‘아이 잠재우기’ 방법이 하나도 먹히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딸아이는 따뜻한 물로 목욕을 시켜도, 우유를 데워 먹여도, 자장가를 부르며 재워도 도무지 잠을 자려하지 않았으니까요. 영아기를 지나 유아기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한밤중에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되지 않으면서 할 수 있는 유일한 방책인 ‘그림책 읽어주기’를 하며 많은 시간을 보냈었지요. 그러니 이 책의 장면 장면에 그려진 아빠와 딸의 대화나 소파에서 머리를 마주대고 누워 각자 좋아하는 것을 읽다 꿈나라를 향해 함께 떠나는 장면까지 저에겐 전부 익숙한 장면이었습니다.
‘잠잘 시간’의 줄거리는 간단합니다. 밤 11시 반, 밀려오는 졸음을 억지로 참으며 하품을 하는 아빠가 어떻게 해서든 잠잘 시간을 미루려는 아이―프로데 그뤼텐은 아이의 이름을 절대로 말하지 않습니다. ‘너’라는 단어로 일반화되어 있기 때문에 어떤 아이도 이 책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것이지요.―와 함께 아이가 주인공이 되는 책을 만들다 자러 가는 내용이니까요. 그러나 글의 내용을 꼼꼼히 읽어보면, 아이의 세계가 어떻게 풍성해져 가는지 알아가게 됩니다. 아이는 책의 주인공이 되어 세계 일주도 하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기도 하며, 과거와 미래를 왔다 갔다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아이는 ‘나는 그냥 지금 내가 좋아요’라고 아빠에게 선언합니다. 상상과 현실을 오가며 나누었던 책을 덮고 아이는 잠자러 가기 전 화장실을 가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이 나지요.
하나하나 사랑스럽던 문장만큼이나 그림도 매우 재미있습니다. 아이와 아빠가 누워있는 자세를 보세요. 붕어빵이 따로 없군요. 졸음을 견디고 하품을 하며 아이의 세계로 끌려가던 아빠가 아이와 떠나는 여행을 통해 아이의 세계를 확장해주는 모습이 강렬한 색상으로 그러나 부드럽게 그려져 있습니다. 책장에 꽂혀있는 여러 가지 책의 주인공―말괄량이 삐삐, 코끼리 바바, 빨간 모자와 늑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토끼와 체셔 고양이 등등―들이 함께 여행을 떠나는 모습, 욘센의 작품인 ‘안녕’, ‘나의 작고 커다란 아빠’를 찾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그림책을 덮으면서 우리는 아이에게 무엇을 원하고 있을까? 생각해봅니다. 아이의 행복을 바라고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길 바라면서도 끊임없이 아이 자신이 아닌 그 무엇이 되라고 재촉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이에게 많은 세상을 보여주기 위해 말을 건네고, 그 말이 건너가 아이에게 닿아서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며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가도록 도와주기 위해 부모인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책을 보면서 “세상을 누비며 사람들을 구해주는 슈퍼 걸! 어때?”라는 문장에서는 한참 웃었습니다. 부모의 마음은 그러하니까요. 내 아이가 뛰어난 그 어떤 존재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 부모가 있을까요? 그러나 무엇보다 맘에 와 닿은 문장은 “원한다면 얼마든지. 네 책이니까 네 마음대로.”였습니다. 주말에 아이가 기숙사에서 돌아오면, ‘너의 인생이니까 너의 마음대로, 그러나 항상 곁에서 함께 할게.’ ‘슈퍼 걸이 아니어도 좋아 건강하게 자라기만 해줘’라고 말해줘야겠습니다. 이제 좀 컸다고 이런 말을 들으면 쑥스러워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