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동물들의 장례식
글/그림: 치축
출판사: 고래뱃속
출판일: 2020년 11월 30일
서평: 이창기(창원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
어린이에게든 어른에게든 ‘죽음’이라는 주제는 무겁고 엄중하다. 언론과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에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누군가의 사망 소식을 거의 매일 접한다. 그렇다고 해서 과연 우리가 죽음에 대해 비교적 둔감해졌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현대인들도 자신과 가까운 사람이나 반려동물의 죽음 앞에서는 결코 둔감을 논할 수 없을 정도로 슬픔과 상실감을 강렬히 느낀다. 그림책 ‘동물들의 장례식’의 작가는 여러 동물들이 동료나 가족의 죽음에 대해 행하는 각종 의식적 행동을 보여줌으로써 인간세계에서 비슷한 상황을 겪을 수 있는 독자를 위로한다.
첫 두 장면은 인간세계에서 시작된다. 질병, 사고 등의 연유로 인간에게 죽음이란 예고 없이 갑작스럽게 찾아올 수 있으며 그 시기는 누구도 정확히 알 수 없다는 메시지가 등장한다. 그러나 바로 다음 장면부터 작가는 인간세계를 잠시 떠나 동물들의 세계로 독자를 이끈다. 작가는 사실적인 그림으로 돌고래, 까마귀, 늑대, 코끼리, 고릴라가 각각 어떻게 동족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장례의식을 치르는지 보여준다. 동료나 가족의 죽음에 대해 동물들이 각 나름대로 장례식을 거행하는 모습은 웬만한 인간의 장례식만큼이나 엄숙하고 진중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또한, 죽은 이 주변에 모이고 자리를 지켜주는 의식적 행동은 인간만큼이나 동물도 동족의 죽음에 대해 슬픔을 느낀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구체적으로, 돌고래는 가라앉으려고 하는 동료를 수면 위로 온 힘을 다해 밀어 올리며, 까마귀는 떼를 이루어 죽은 이의 곁에 모여든다. 늑대는 울부짖으며 코끼리는 기다란 코로 식어 가는 친구를 쓰다듬고 그들만이 아는 곳에 무덤을 만든다. 고릴라는 동료 곁에서 밤을 지새고 차례로 다가가 친구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인사를 나눈다. 동물들의 이러한 의식은 우리 인간들의 장례식과 무척 닮아있다. 자신과 가까운 사람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달려와 임종을 지키면서 마지막을 함께 할 뿐만 아니라 생명이 다한 후에도 묵념과 헌화 등의 방법으로 장례의식을 이행하는 우리 인간들의 장례의식은 큰 틀에서는 동물들의 장례식과 같음을 알 수 있다. 작가는 이러한 점을 암시하며 후반부에는 다시 인간의 세계로 되돌아온다. 여러 사람이 관 주위를 둘러 싸서 운구를 하는 장면은 인간도 여느 동물과 같은 맥락에서 장례의식을 행한다는 점이 명확해진다.
이후 두 장면은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며 사별한 사람들을 위로한다. 아무리 소중하고 가까운 사람을 떠나보냈더라도 남겨진 사람들은 이승에 남아 자신의 명이 다할 때까지 계속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하루는 또 시작된다’는 작가에서 메시지에서 독자는 슬픔을 딛고 남겨진 사람은 남겨진 사람대로 다시 일상생활을 영위하게 됨을 인지할 수 있다. 특히, 마지막 장면은 어머니와 신생아의 모습을 담아내며 ‘죽음’과 ‘사별’이 있는 만큼 ‘새로운 탄생’이나 ‘새로운 만남’ 또한 우리 삶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얼마 전, 어미 돌고래가 죽은 새끼 돌고래를 2주 동안이나 수면 위로 들어 올리는 행동을 반복했다는 뉴스기사를 보았다. 과학자들은 어미의 이 행동을 보고 새끼가 죽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어미가 새끼의 숨을 쉬는 것을 도우려고 안간힘을 쓴 것이라 추정하였다. 물론, 과학자들의 의견이 타당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그림책을 본 독자라면 분명 다른 해석을 내놓을 것이다. 이 그림책을 음미한 독자라면 어미가 새끼의 죽음을 인지하지 못해 한 행동이라기보다는 새끼의 죽음을 애도하며 곁을 지켜주는 일종의 장례의식일 것이라는 생각에 보다 무게가 갈 것이다.
작가는 펼침면 만을 사용하여 가로로 긴 그림으로 상황의 현장감을 잘 묘사하였다. 작가는 느림보 그림책 창작 프로그램에 참가하였고 월간 <어린이와 문학> 제15회 그림책 공모전에서 당선된 더미북을 완성하여 본 그림책을 탄생시켰다. 이 시대의 어린이와 어른들이 자신과 가까운 이들의 죽음에 대해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그림책이 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