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나의 101번째 능력
글/그림: 황수민
출판사: 느림보
출판일: 2020년 9월 29일
서평: 이창기(창원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녀는 자신에게 100가지 능력이 있다고 말하며 이 중에서 일곱 가지만 독자에게 알려주겠다고 한다. 이어서, 구름보다 높은 우주 끝까지 하늘을 나는 첫 번째 능력, 젤리구름 위에서 지구를 내려다보는 26번째 능력, 자전거에 사람들과 동물 친구들을 다 태우고 지구를 102.5 바퀴를 도는 47번째 능력, 뒤로 달리는 59번째 능력, 아무도 올라가지 못한 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산꼭대기까지 물구나무서서 올라갈 수 있는 61번째 능력, 빨대 하나로 바닷 속에서 숨 쉴 수 있는 83번째 능력, 아주 아주 깜깜한 밤에 내가 접은 종이배를 타고 폭풍우 치는 바다를 건너는 100번째 능력까지 총 일곱 가지 능력을 대표로 골라 소개한다. 여기까지 독자는 소녀가 장애아동이라는 명시적 단서를 찾기 어렵다. 독자는 그저 이 소녀가 슈퍼히어로가 되어 보는 듯한 공상을 즐기는 정도로 생각하면서 소녀가 이야기하는 각각의 능력들을 음미할 따름이다.
그런데 소녀가 갑자기 “빅뉴스! 빅뉴스!”라고 외치며 진짜 자랑하고 싶은 또 한 가지 능력을 소개하면서 독자는 이 소녀가 시각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게 된다. 그런데 이 101번째 능력은 기존에 소개했던 일곱 가지의 능력과 비교하면 공상이나 과장이 없는 가장 현실적인 능력으로 제시된다. 101번째 능력은 ‘내 친구 하늘이와 학교에 가는 거!’인데 여기서 하늘이는 맹인안내견을 말한다. 기존 일곱 가지 능력을 소개할 때부터 소녀가 쓰고 있던 선글라스의 의미는 하늘이의 등장과 함께 더욱 명확해진다.
이 101번째 능력은 이 그림책 제목의 일부이기도 하다. 시각장애를 가진 소녀는 평범한 어린이들의 일상인 ‘등교’를 자신이 가진 ‘아주 특별한 능력’으로 소개하였는데 어찌 보면 소녀의 가장 기본적이고도 평범할 수도 있는 일상이 소중하고도 값진 무언가로 소개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장면은 독자에게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첫째, 어린이의 너무도 당연한 권리인 학습권이 왜 이 시각장애 아동의 입장에서는 이렇게 ‘특별한’ 무언가가 되어야 하는지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이는 장애인의 능력을 바라보는 우리의 오래된 시각을 돌아보게 한다. 장애인에 대해 일반인들은 종종 ‘결핍 프레임’을 씌우고 이들의 능력이 제한적일 것이라는 편견을 가지곤 한다. 장애인의 신분으로 이룬 성취에 대해 ‘장애를 딛고’, ‘장애인임에도 불구하고’와 같은 표현을 애써 붙여서 칭찬 아닌 칭찬을 하곤 한다. 물론, 어려움을 딛고 좋은 결과를 이룩했다는 것은 찬사를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장애인이라는 점을 굳이 꼬집어 애초에 장애인에 대한 우리의 기대수준이 낮았음을 암시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점이 든다. 즉, 무심코 던진 말이 장애인 입장에서는 ‘기대했던 것에 비해’, ‘생각했던 것 보다’ 라는 의미로 들릴 수도 있다는 점을 우리는 의식하고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그림책으로 돌아가 보면, 소녀의 ‘학교가기’는 너무도 일상적이고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이며 맹인안내견 등의 보조적 요소 또한 당연히 지원되었어야 할 것들이다. 특별한 것이 특별한 것으로 간주 되지 않고 특별한 요구가 있는 구성원들의 요구가 자연스럽게 충족되는 세상을 기대해본다. 맹인안내견 하늘이의 작은 도움으로 소녀는 보통의 아이들이 가진 능력을 동등하게 가질 수 있다는 점은 장애아동의 자립을 의미하기도 한다.
둘째, 독자들이 그림책에 제시된 슈퍼히어로적인 요소들을 공상 과학적으로 느꼈다면 이는 우주 만물의 세계 속에서 인간의 나약함과 미약함을 인정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우리가 지극히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비장애 일반인들조차도 하늘을 날고 구름 위에서 지구를 내려다본다든가 자전거로 지구를 도는 등의 초인적인 능력은 가지지 못한다. 이 능력들은 말 그대로 ‘초인적’ 능력들이며 평범한 인간이 이러한 능력을 갖추기란 무척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림책에 등장한 시각장애인 소녀는 맹인안내견, 점자, 청각적 보조 장치 등의 작은 도움만 있다면 비장애 일반인들이 매일 해내는 수많은 것을 수행해낼 수 있다. 오히려 비장애인들의 장애인들에 대한 편견이 오히려 장애인의 능력을 제한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 엘리베이터에 무심코 부착하는 항균필름이 시각장애인들의 점자 읽기를 방해한다는 뉴스기사를 보았다. 시각장애인들은 평소 점자의 도움을 받아 비장애인들과 마찬가지로 엘리베이터를 어렵지 않게 이용하고 있었을 것이다. 항균필름 사태는 비장애인들의 부족한 인권감수성이 오히려 버튼을 판독하는 시각장애인들의 능력을 제한해버린 대표적 예시라 할 수 있다. 또한, 최근 대형마트에서 맹인안내견의 출입을 금지하여 논란이 되었던 사례만 보더라도 장애인의 인간으로서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가 침해되는 경우가 우리 사회에 만연해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 누구에게도 인간의 가장 기본권을 제한할 권한은 없으며 이는 장애인복지법에도 명시되어 있다. 아마 그림책의 작가는 독자가 이러한 사실을 통찰하고 깨달을 수 있도록 슈퍼히어로적인 요소를 넣은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마지막 장에서 소녀가 제시하는 102번째 능력은 소녀가 아직은 완성하지 못했지만 향후 개발할 예정이라고 소개된다. 이 능력은 ‘동물원에 사는 사자 머리를 손질해주는 거’인데 이는 소녀의 장래희망과 관련지어 생각해 볼 수 있다. 비장애인들도 단순 미용사가 아닌 사자의 머리를 손질해주는 직업은 아마 엄두를 내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소녀는 이런 미래의 꿈과 커다란 포부를 밝힌다.
대학에서 만화과를 졸업한 작가답게 그림은 디테일하면서도 역동적이다. 작가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을 사진을 보는 듯이 정밀하게 묘사하기도 하고 만화처럼 과장되게 표현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작가의 그림은 현실과 공상의 경계를 자유로이 넘나들며 독자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