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나는 해파리입니다
글 /그림: 베아트리스 퐁타넬/알렉상드라 위아르 / 옮김: 김라헬
출판사: 이마주
출판일: 2020년 7월 30일
서평: 김은심(강릉원주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
‘해파리라니, 내가 아는 그 해파리?’ 우연히 접하게 된 ‘나는 해파리입니다’를 보며 처음 든 생각입니다. 그림책 제목, 해파리, 그리고 여자아이 수영복의 형광 주황색이 시선을 붙듭니다. 앞뒤면지에는 다양한 해양생물을 그려 놓았는데, 왜 푸른색 대신 형광 주황으로 바다를 칠했을까? 궁금합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를 찾아보니 ‘주황색은 사람들의 이목을 모으고 친밀감을 느끼게 하는 활동적인 색, 강한 인상을 주고 싶을 때 효과적이나 지나치게 많이 사용하면 피곤한 느낌을 줄 수 있음, 주황색을 좋아하는 사람은 의욕적이고 사람을 즐겁게 하는 것을 좋아하는 타입임, 산업현장에서는 안전색채로 사용됨’ 그리고 형광색은 ‘난색계와 중간색계에 많으며 그것만 뜬 것 같이 보이는 효과를 갖는다’ 등으로 정리해 놓았습니다. 그림작가인 알렉상드라 위아르는 해파리에 대한 기사를 신문에서 접하고 이 책을 그리게 되었다고 하네요.
해파리는 6억 년 전에 등장하여 그 모습이 거의 변하지 않으면서 지금까지 살아남은 생명체입니다. 너무나 다채로운 색과 모양 그리고 크기가 있어서 기르고 싶은 욕구가 생길 수도 있으나 사실 독성 때문에 사육난이도나 위험도가 높다고 합니다. 해파리는 폭풍우를 예보하는 생물이라 해변가에 해파리가 대량으로 나타나면 그 근방에 곧 폭풍우가 닥칠 것이라는 예보라고 하네요. 해파리는 가려움증을 유발하거나 사망에 이르게 하는 등 인간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폭풍우를 예보하기도 하는군요. 그러나 자료를 아무리 찾아봐도 도움이 되는 것보다 피해를 준다는 이야기만 계속 나옵니다. 하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인간에게 유익한가를 중심으로 존재가치를 따진다는 것은 인간중심적인 생각에 불과하지요. 그래서 글 작가인 베아트리스 퐁타넬이 화자를 ‘해파리’로 상정한 것일까요? 이 책의 제목과 첫 페이지의 첫 문장은 모두 ‘나는 해파리입니다’입니다. 소녀가 자신의 이름을 이야기하는 대신, 바다를 유영하는 해파리가 스스로 자신의 존재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인간인 소녀 중심의 이야기 전개가 아니라 해파리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진행하다니, 참 기발한 발상이라 생각해봅니다.
소녀와 해파리, 해파리와 소녀. 둘은 형광 주황색이라는 독특한 색으로 푸른 바다에서 두드러집니다. 서로에게 친밀감을 느끼고, 활동적으로 무엇인가를 행하여, 결국 즐거움을 선물하게 되는 것일까요? 그들에게 형광 주황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요?
형광색 바다로 표현된, 그래서 다소 피곤하고 지치게 하는 면지를 지나 독자가 만나게 되는 첫 페이지에는 작은 해파리가 바다 속에서 첫 춤을 추고 있습니다. 그제야 그림 작가가 왜 면지에 형광 주황을 잔뜩 입혔는지 알 것 같습니다. 작은 해파리가 바다 속 친구들에게 인사하며 아슬아슬 비껴 지나가는 첫 페이지에 플라스틱 병이 하나 슬쩍 놓여있습니다. 바다가 플라스틱으로 오염되고 피곤해하고 있음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계속 책장을 넘겨봅니다. 어느새 눈은 그림책의 장면 하나하나를 꼼꼼히 살피며 어딘가에 있을지 모를 플라스틱 쓰레기를 찾고 있습니다. 다행이도 깊은 바다에는 아직 쓰레기가 닿지 않은 듯 물고기들만이 자유롭게 헤엄칩니다. 그런데 바다에서 자유롭게 춤추던 해파리가 의도치 않게 소녀의 팔목에 불에 덴 듯한 상처를 남겼습니다. 화가 난 소녀의 아빠가 그물망으로 해파리를 잡아 북적대는 사람들 그리고 플라스틱 쓰레기가 널린 해변가에 해파리를 내동댕이쳤습니다. 수분 98%로 구성된 몸을 가진 해파리가 뜨거운 태양 아래 익어갑니다. 흠, 우리를 아프게 하는 해파리, 우리에게 도움을 주지 않는 해파리가 말라 비틀어져 가는 것을 보고만 있어야할까요?
아! 다행입니다. 단호한 표정의 소녀가 아빠가 사용했던 그물망으로 작은 해파리를 바다로 돌려보내는 장면이 나오네요. 사람들의 편리를 위해 발명된 플라스틱이 지구를 오염시키듯 작은 해파리를 죽음으로 몰아냈던 그물망이 삶을 주는 도구가 되기도 하는 것이지요. 세월이 지나 작은 해파리와 작은 소녀가 재회합니다. 둘 모두 성장했군요. 성장한 해파리가 자라난 소녀를 위해 추는 춤은 아름답습니다. 고도의 지능을 소유한 고등동물인 인간과 다세포동물 가운데 가장 하등한 동물인 해파리 사이의 우정과 연대를 느끼게 합니다.
마지막 장면을 넘어 뒷면지에 도달하면 피곤한 형광주황 바다에서 헤엄치는 해양생물들을 다시 마주하게 됩니다. 지구는 인간만의 것이 아니라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의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라는 듯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책 표지가 예사롭지 않네요. 표지에 그려진 해파리와 소녀는 마주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 소녀의 입가에는 미소가 살짝 보입니다. 서로 해를 끼치는 존재로 보이지 않아요. 마치 기르던 강아지나 고양이처럼 반려동물을 보고 있는 듯한 소녀의 모습, 그리고 소녀를 향해 나아가는 해파리.
그간 온난화가 가속화되며 생태계가 급격히 변화되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코로나 19로 사람들의 왕래가 잠시 멈춘 사이 생태계는 빠른 속도로 회복되고 있다고도 합니다. 사람들이 더 좋은 세상이 오기를 바라며 개발하고 발전시킨 행동이 생태계에 일으키는 수많은 폐해를,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위해 할 수 있는 우리의 몫을 생각해봅니다. 우리가 그리는 미래가 과하지 않은 형광 주황색이길 바라며 책을 덮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