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알고 있지
글: 정하섭
그림: 한성옥
출판일: 2007. 11. 15.
서평: 변윤희(동명대 유아교육과)
동물이나 인형을 등장인물로 하는 많은 그림책들이 의인화 표현을 사용합니다. 의인화가 유아를 대상으로 하는 그림책의 큰 특징 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나무를 의인화한 그림책을 머릿속에 떠올리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나무의 특성이 스스로 움직일 수 없고 소리를 낼 수도 없기 때문인지, 아니면 사람과는 너무나 다른 구조와 생김새 때문인지 그 이유를 알 수는 없으나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제외하고는 나무를 의인화하여 표현한 책으로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책 「나무는 알고 있지」라는 제목은 흡사 나무를 인식이 가능한 인격체로 여기는 듯하여 그 문장 자체가 너무나 생경하고 그 뜻이 얼른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시작되는 첫 장면에서 글은 나무의 수동성과 부동성을 이야기합니다. 그렇지만 그림 속의 나무는 추운 겨울에 새의 둥지들을 품고 보호하며 흡사 마을 전체를 지켜주고 서있는 듯 듬직한 이미지를 보여주어 글과 대조적인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이러한 글과 그림의 대조로 인하여 이 장면은 우리에게 나무에 대한 호기심을 유발하며 글에서 묘사하는 나무의 특성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합니다.
정하섭 글작가의 글은 자연의 이치를 깨달은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손자나 손녀에게 조용하고 친절하게 설명하는 상황을 떠오르게 합니다. 세상의 이치를 깨달은 노인의 친절하고 부드러운 어투와 같은 문어체의 글에는 나무에 대한 친근함과 존중이 묻어납니다. 또한 자연의 이치를 깨달아서 계절에 앞서 준비하고 순응하는 나무의 지혜를 찬양하는 내용은 생명을 가진 존재로 나무를 존중하는 새로운 시각을 보여줍니다.
반면 그림작가의 그림은 시점과 구도의 사용으로 활기차고 역동적인 젊음을 느끼게 합니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앞으로 올 봄을 감지하고 준비하는 나무로 시작하는 그림책은 큰 나무의 밑에서 올려다 본 시점을 사용하여 햇살이 나뭇잎 사이로 부서지는 눈부신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어 땅속을 투시하여 뿌리를 들여다보는 투시도법을 사용하고, 다음 장에서는 나무의 꼭대기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시점을 사용하여 동물에게 집을 제공하고 먹을 것을 제공하며 목재를 제공하는 나무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클로즈업하여 묘사된 꽃과 곤충의 모습은 냄새로 곤충을 유혹하여 꽃가루를 전파하는 나무의 영리함과 능동성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가까이 나무를 들여다보던 카메라는 다시 먼 하늘의 새를 응시하며 시각적인 휴식을 제공합니다. 이후 하늘에서 내려온 카메라는 높고 푸른 산과 숲을 지나 짙푸른 초록의 밀림으로 들어갑니다. 우거진 밀림의 시각적 중압감은 다음 장에서 보여주는 맑고 푸른 가을 하늘을 여백으로 한 붉은 단풍의 모습으로 경감됩니다. 이어서 펼쳐지는 가을의 낙엽과 겨울나무의 모습은 다른 생명을 도우며 더불어 살아가는 나무의 의젓함과 여유로움을 느끼게 합니다.
「나무는 알고 있지」는 열매와 단풍이 나오는 장면의 붉은 색을 제외하고는 전반적으로 푸른색 위주의 절제된 색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색의 사용은 책의 주제를 집중력 있게 전달합니다. 그리고 단조로운 색의 사용으로 인해 자칫 무겁고 지루할 수 있는 부분은 다양한 시점과 구도의 사용으로 역동성을 부여하여 극복하고 있습니다. 작가는 나무를 인간과 같이 생명을 지닌 고귀한 하나님의 창조물로서 인간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생명체로 표현하고 있으며, 이러한 새로운 시각을 독창적인 글과 그림의 조합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나무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으나 정보그림책 답지 않은 창의적인 글과 그림의 조합을 통해 그림책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