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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을 열면



제목: 가방을 열면

작가: 이영림

출판사: 봄봄

발행일: 20231129

서평: 김세희 (본 학회 전임회장)

 

영아들 대부분은 집을 방문하는 사람의 가방을 보기만하면 뒤지는 경향이 있다. 어른들은 기겁을 하고 가방을 숨겨두기도 하지만 영아의 가방에 대한 집요한 호기심을 피할 수 없다. 영아기 아이의 가방에 대한 호기심은 유아기에도 계속되지만, 영아기 때처럼 남의 눈치를 안보고 뒤질 수는 없어서 유아의 호기심을 반영한 그림책이 많이 출간되는 게 아닌가 싶다. 또한 유아기에 유아들은 소중하다고 여기는 물건을 자기 소유 가방에 넣고 다니는 즐거움을 알기 시작한다. 이 그림책 주인공 준우는 다른 사람들도 각자 소중한 것을 가방에 넣고 다닌다고 생각한다. 그 소중한 것이 무엇 일까하는 궁금증에서 이 그림책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 그림책은 준우 주변의 인물 혹은 마주치는 인물들의 가방에 무엇이 들어 있을까?’ 하는 준우의 호기심과 궁금증, 또 실제 가방 속을 보여주며 그 답을 알려준다. 마치 정보그림책처럼 보이지만 그 이상을 보여주는 게 이 책의 독특한 매력이다. 종이를 들추며 읽는 플립플랩 북 (flip-flap book) 형태로, 가방을 열면 가방 안에 든 물건을 볼 수 있고, 두 번째 장을 들추면 가방 주인의 삶, 희망, 생각을 읽을 수 있다. 가방은 두 장의 문을 통과하며 만나는 비밀창고의 역할을 한다. 속표지에서 준우도 가방 안에 뭐가 있어?”라는 질문에 비밀이에요.” 라고 답한다.

 

이웃집 할머니의 시장 가방에는 우리의 예상대로 계란, 배추, 우유, 사과 등의 식료품이 들어있다. 식료품 그림이 그려진 장을 들추면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그림을 그리는 할머니를 볼 수 있다. 할머니의 현재 삶일 수도 있고, 꿈일 수도 있다. 이 두 번째 그림이 이 그림책의 관전 포인트이며 일반 그림책과 구별되는 이 그림책의 맛과 멋이다. 가방에서 할머니로 시선을 돌리면 휴대용 스케치북과 연필이 할머니 가디건 스웨터 주머니에 꽂혀있다. 이 휴대용 스케치북과 연필은 가방 속 두 번째 그림이 단지 희망사항이 아님을 확인시켜주는 연결고리이다.

 

친구 아빠의 검은 색 큰 가방 안에 기타와 문화교실 출석부가 들어 있는 걸 보면 아마도 아저씨는 문화교실에서 기타를 가르치는 것으로 짐작된다. 기타그림을 들추면 무대 위에서 서치라이트를 받으며 전자기타를 연주하는 멋진 아저씨의 모습과 환호하는 관중의 모습이 보인다. 아저씨가 꿈꾸는 미래의 삶일까 혹은 추억 속 삶의 모습일까?

 

두 번째 장을 들추면 다소 엉뚱한 그림을 발견하는 즐거움도 있다. 세 마리 강아지를 끌고 가는 아저씨의 두 번째 장에는 강아지 세 마리와 야구놀이를 하는 장면이 펼쳐지고, 자전거 타는 형의 두 번째 장에는 먹고 싶은 음식에 대한 욕구가 넘친다. 배구공, 축구공, 농구공 그림이 그려진 가방을 멘 누나(뒷모습으로는 성별구분이 안되는데 가방속의 수영복을 보고 누나인지 알 수 있다)를 보고 준우는 아빠랑 하던 야구공잡기 놀이를 떠올리는데, 누나는 수영을 하러가는 듯하고 두 번째 장은 바다 속에서 고래, 거북, 해파리, 물고기들과 헤엄치는 그녀의 꿈을 투영하고 있다.

 

이 그림책은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라는 회자되는 말처럼, 무덤덤히 일상생활을 하는 사람들, 학생들, 회사원, 선생님, 어린이들까지도 지나간 추억, 현실을 넘어서 꿈꾸는 삶과 소원들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음을 본다. 준우는 여름 바닷가에서 주운 조가비와 아빠, 엄마와 모래찜질하던 날의 추억을 가방에 담고 있다. 우리들의 가방 두 번째 장에는 어떤 추억과 미래의 꿈이 그려질 수 있을까 생각해보자.

 

작가의 다른 작품에서도 보이지만 유난히 이 작품에는 어른들의 어깨 아래 부분만 보여주고 얼굴을 볼 수 없는 장면이 많다. 처음에는 준우의 눈높이에 맞추어 그린 것은 아닐까하는 추측을 하다가 그것도 이유가 되지만, 자칫 복잡해질 수 있는 그림에서 독자를 가방에 시각적으로 집중할 수 있도록 한 작가의 전략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작가는 유아들이 잘린 인물그림을 보고 인물의 전체 모습과 그 배경 그림까지 유추해낼 수 있겠다는 전제로 인물을 부분만 그려 제시한 것이다. 이는 현대 유아들이 애니메이션과 게임에서 클로즈업이나 뒷모습, 혹은 팔, 다리만을 보고도 인물을 알아내는 상황과 장면을 자연스럽게 접하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 작가는 앞면지에 인물들의 전체 모습을 친절하게 보여주고 있어 얼굴은 어떻게 생겼을까하는 궁금증을 해소시켜준다. 그림책을 강의하던 초창기에 특히 유아문학교육 강의에서 유아들을 위한 인물 그림은 온전한 형태로 되어야 하며 자르지 말아야한다고 했던 강의내용은 수정되어야할 듯하며, 격세지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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