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할머니체조대회
작가: 이제경 글, 그림
출판사: 문화온도 씨도 씨
발행일: 2023. 12. 22.
서평: 김세희 (KBBY 전임회장)
‘할머니’하면 나이 들고 얼굴은 주름지고, 몸도 불편한 이미지를 떠올린다. 사실 나이가 들면서 특히 여자들은 출산, 육아, 가사노동으로 인해 아픈 곳이 많아진다. 하지만 주변을 돌아보면, 요즈음 현대 할머니들은 여기저기 아픈 곳을 달래가며,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경우가 많다. 살아오는 동안 가족을 위해 일하느라 혹은 여건이 되지 않아 포기해야만 했던 자신을 위한 삶을 시작하는 할머니도 많다. 그들 중에는 전혀 발조차 들여 놓을 수 없다고 생각한 영역에서 한걸음 한걸음 노력하여 성취감을 얻기도 한다.
이 그림책에서 할머니들은 손연재 같은 20대들이나 할 수 있는 현대판 체조라는 영역에 도전한다. 할머니체조대회에 출전한 각 나라의 할머니들은 체조를 통하여 그동안 살아온 자신의 인생을 보여주며, 자신의 나라를 대표하기도 한다. 리본 종목에 출전한 이탈리아 마르가리따 할머니 편에서는 리본이 파스타면으로 바뀌면서 평생 파스타면으로 요리를 만들던 행복한 시절을 보여준다. “맘마미아~ 쫄깃한 면발이 끊어지면 안될텐데~” 하며 환한 미소를 짓는다.
마루 종목에 출전한 캐나다의 헤일리 할머니 편에서는 할머니가 마루 사이를 사뿐사뿐 걷자 마을 언덕에 가꾸던 꽃들이 피어난다. 예쁜 꽃이 핀 들판 사이에서 손을 흔드는 젊은 날의 할머니가 보인다. 평행봉 종목에 출전한 모로코의 아스마 할머니 편에서는 평행봉이 베틀로 변하면서 아름다운 모로칸 러그를 만들던 할머니의 삶을 보여준다.
뜀틀 종목에 출전한 한국의 한영 할머니 편에서는 뜀틀이 수제비를 뜰 수 있는 거대한 밀가루 반죽덩어리로 변한다. 뜀뜰 위에서 체조를 하는 동안 요리하는 할머니의 젊은 시절 모습과 화전, 호박범벅, 전통 춤, 장독, 기와 등 한국의 전통문화를 보여준다. 공 종목에 출전한 아르헨티나의 가브리엘라 할머니 편에서는 공이 축구공으로 변하며, 아이들을 위해 능숙한 바느질로 축구공을 꿰매어 주었던 그녀의 신나고 행복한 삶이 펼쳐진다. 곤봉 종목에 출전한 몽골의 어요나 할머니 편에서는 곤봉들이 통통히 차오른 염소의 젖으로 변하고, 전통가옥 게르를 배경으로 염소 젖을 짜는 할머니의 젊은 날을 볼 수 있다. 후프 종목에 출전한 폴란드의 마리아 할머니 편에서는 후프가 기찻길로 변한다. 마리아 할머니는 자신의 오랜 꿈이었던 기관사가 되어 아이들과 할머니들과 함께 대륙을 횡단하는 세계 여행길에 오른다.
결국 체조대회가 끝나고 수상자를 발표하는 자리는 파리 한 마리만 날아다니고, 그야말로 “파리 날리는” 무대가 되어 버린다. 그렇지만 이어지는 뒷 면지는 축제 분위기이다. 앞 면지에서 물결치는 오선지와 음표를 연상시키는 빨간 점들 사이에서 흐르는 음악에 맞추어 춤추는 아름다운 소녀들과 실루엣으로 할머니 모습들이 어렴풋이 보인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뒷 면지에는 소녀들과 함께 체조하는 할머니들의 온전한 모습이 드러나며, 체조하는 할머니의 모습은 체조하는 젊고 아름다운 소녀들의 모습 못지않게 멋지고 당당하며 행복해 보인다. 표지에서 왕관을 쓰고 체조하는 검은 색 형상은 마을공원에 있는 동상이다. 이제 할머니들은 동상과 같은 검은 실루엣이 아니라 다양한 색을 지닌 할머니들의 모습으로 빛난다.
이 그림책에서 특히 아름다운 부분은 할머니들이 체조하는 장면에서 느껴지는 조화로운 색감이다. 할머니들의 체조 의상과 기구들의 일관된 색상도 안정감을 준다. 주황색의 의상과 리본, 파스타 면, 캐나다의 상징인 메이플 잎이 그려진 꽃분홍 색의 의상과 꽃잎, 초록색의 독특한 의상과 초록계열의 러그, 푸른색 바지와 푸른색 줄무늬의 할머니 의상과 푸른색 공은 일관성을 보여준다. 나아가 푸른색 공의 같은 계열 색의 변화, 마침내 보라색을 지닌 푸른 축구공으로의 색감 변화와 변하는 과정을 표현한 사선 구도는 리듬감과 동시에 운동감을 동반한다. 마리아 할머니의 보라색 의상, 후프, 기찻길, 기차가 내뿜는 몽실몽실 보라색 연기도 안정감과 동시에 운동감을 동반한다.
이 그림책에서 할머니들의 시도는 할머니의 인생 전체를 담고 있으며, 체조로 삶을 표현하고 있다. 가족을 위해 파스타면을 삶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밥을 짓는 것과 같다. 생계를 위해 러그를 짜고, 축구공을 꿰매고, 염소 젖을 짜는 고단하고 지난한 삶을 이어온 어머니들과 할머니들의 노고를 바탕으로 세계의 각각 문화는 아름답고 찬란하게 빛나며 명맥을 이어왔을 것이다. 할머니체조대회를 보면서 그것이 무엇이든, 그림이든, 노래든, 여행이든, 악기 연주든, 인문학 공부든, 춤이든 할머니들의 새로운 시도와 성취를 손뼉치며 응원하고 싶다.